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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타소식] 영조의 위장병은 고추장 때문이었나 [매일 경제 2019-08-02]
글쓴이 webmaster 조회 730 등록일 2019.08.06

조선의 미식가 15인이 애지중지했던 음식의 안팎을 파고드는 책이 출간됐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학 교수이자 장서각 관장인 저자는 조선의 반상을 종횡무진하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진은 서울 남산 한국의집에서 전통음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구현한 `어진정찬` 모습.  
[사진 제공 = 한국문화재재단]

사진설명조선의 미식가 15인이 애지중지했던 음식의 안팎을 파고드는 책이 출간됐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학 교수이자 장서각 관장인 저자는 조선의 반상을 종횡무진하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진은 서울 남산 한국의집에서 전통음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구현한 `어진정찬` 모습. [사진 제공 = 한국문화재재단]



제대로 차린 밥상 같은 책, 글로 펼친 `조선의 먹방`이다. 굽고 찌고 담그고 튀기고 썰고 익히고 버무린 저자의 반상은 상다리가 대번에 부러질 듯 침이 고이다 못해 흘러버리고 목울대에서 꿀꺽, 하는 추임새가 곁들여진다. 조선에선 미식(味食) 대신 `지미`란 단어를 썼다는데 맛()을 아는() 조선인 15인이 애정하던 음식을 한데 묶었다. 여염댁 부엌부터 사대부가 애지중지한 명물 반찬, 붉은 용포 뒤집어쓴 왕의 매운맛 중독까지 파고든다.

책에 소개된 15종의 음식을 현대판 코스 요리로 재구성해 차례대로 소개한다. 다 읽으면 배고파진다. 전채 요리는 어만두다. 어만두가 무엇인가. 신사임당에 이어 두 번째 여중군자(女中君子)로 꼽힌 안동 장씨 장계향은 `음식디미방`에 썼다. "생선을 얇게 저며 소를 석이, 표고, 송이, 생치, 백자 한데 짓두드려 지렁기름에 볶아…." 생선살로 피를 만들었다니 일본 교자, 티베트 모모, 러시아 펠메니, 우크라이나 바레니키와도 다른 독특한 요리다. 장계향이 82세에 쓴 음식 백과전서 `음식디미방`은 조리법 140여 가지를 21세기 서울에 부활시켰다

뜨뜻한 전채로 위장을 깨웠으니 살얼음 낀 동치미로 목구멍을 뚫자. 세조의 어의 전순의가 집필한 `산가요록`엔 순무를 먹는 다소 괴이한 장면이 나온다. "동치미 국물에 적시고 소금 조금 찍으면 그 맛이 더없이 좋다." 매운맛 강한 순무는 숙성시켜 달래고 소금을 조금 찍어 숟가락으로 먹었다 하니 동침(凍沈) 혹은 동침(東沈)으로 불리던 동치미의 옛맛은 고향의 풍미이겠다

조선식 수프 요리라 할 두붓국 한 사발은 속을 다시 지진다. 인조 때 문인 조극선의 `인재일록` "연포(軟泡)를 하기로 약속하고"란 문구가 적혔다. 정약용에 따르면, 연포는 두붓국이다. 연포회()를 열자는 말을 "연포를 하자"고 줄여 쓰기도 했단다. 육수는 닭국물이었다고 하니 지금 두붓국보다 진국이었겠다

한국인의 밥상에 고기가 빠질 순 없을 터. 메인은 역시 고기다. 볼따구니 터지게 밀어넣을 상추쌈 소스를 세 가지로 구성했다. 먼저 성균관 유생 이옥의 겨자장이다. "나 홀로 개장(芥醬)에 찍어 반 그릇을 먹었는데 가슴이 시원스럽게 뚫리는 듯했다." 이옥이 쓴 글의 `개장`은 겨자()로 만든 장()을 말한다. 영조라면 고추장을 `찍먹` 하셨겠다. 영조는 신하 조종부 집안의 고추장을 자주 찾았단다. 승정원일기를 보면 영조는 "저번에 처음 올라온 고추장은 맛이 대단히 좋았다"고 엄지를 치켜세운다. 조선의 왕 27인 가운데 가장 오래 살았을지언정 영조는 위장병을 달고 살았는데 저 속쓰림이 정치적 암투 때문인지, 사도세자에 대한 애도 때문인지, 실은 고추장 때문인지는 알 수 없을 터

한편 숙종 시절의 김창업이 쓴 글에는 "감동즙(甘冬汁)에 돼지고기를 찍어 먹으니 참으로 맛있었다"고 쓰였다. 감동즙은 곤쟁이(자하)젓 계열이란다. 제주에서 온 멜젓 사촌쯤 되려나

아까부터 뭔가 허전하다. 쩝쩝 입맛을 다시니, 필시 알코올의 향수렷다. 조선식 소주가 등장하신다. 고려 말기에 이색은 `목은시고`에서 썼다. "도연명이 이 술을 맛보면 깊이 고개 숙일 터, 굴원이 맛을 보면 홀로 깨어 있으려 할지. 반 잔 술 겨우 넘기자마자 훈기가 뼛속까지 퍼지니…." 뼈에 스미는 술이라니, 비유 참 찰지다. 소줏고리에서 밀려나온 증류식 알코올이 빈속의 위장을 타고 흘러가면 정신의 황홀경이 펼쳐진다. 안주로는 요즘엔 신선로로 불리는 열구자탕(熱口子湯), 생선으로 만든 감성돔식해 한 점이 어떠한가

배 채웠으니 식사 나올 차례. `완냉` 한 그릇으로 무더위를 잊자. 조선 시대에도 `물냉` 아니면 `비냉`이었다. 홍석모의 `동국세시기`는 기록한다. "메밀국수를 무김치나 배추김치에 말고 돼지고기 넣은 것"은 요즘 말로 물냉면이오, `국수에 여러 가지 채소와 배·밤, 쇠·돼지고기 편육, 기름장을 넣고 섞은 것`은 골동면(骨董麵), 지금으로 치면 비빔냉면이니 `물냉이냐 비냉이냐, 그것이 문제로다`의 실존적 고민은 역사가 꽤 길다. 허리띠 풀고 먹었을지라도 디저트 빠질 수 없으니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의 과자 강정, 김유의 `수운잡방`에 나오는 쌀엿이 포만감의 종지부를 찍는다


어떤가. 조선의 미식가가 기록해둔 반상은 맛깔스럽지 않겠는가. 그런데 잠깐, 술자리 대미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소주로 쓰린 속을 복국으로 달래보자. 속세의 오래된 명제처럼 숙취에는 이만한 게 없으니 이덕무가 소개하는 조선의 복국이야말로 해장의 왕()이다. 이쯤 되면 도리어, 허기가 우리를 집어삼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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